한국문학 30선 (19) 양반전

한국문학 30선 (19) 양반전

  • 자 :박지원
  • 출판사 :IWELL
  • 출판년 :2013-10-10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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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조 때에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작자의 문집인 ≪연암집 燕巖集≫ <방경각외전 放?閣外傳>에 실려 있다. 저작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지은이의 초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선에 한 양반이 살고 있었다. 어질고 독서를 좋아하였다. 군수가 도임하면 반드시 그를 찾아가 예를 표하였다. 그러나 집이 가난하여 해마다 관곡을 꾸어 먹은 것이 여러 해가 되어 1,000석에 이르렀다. 관찰사가 군읍을 순행하다가 관곡을 조사해 보고 크게 노하여 그를 잡아 가두라고 명하였다. 양반의 형편을 아는 군수가 차마 가두지 못하였고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양반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갚을 길이 없었다. 그의 아내는 “당신이 평소에 글 읽기를 좋아하였으나 관곡에는 소용이 없구려! 어이구 양반! 양반(兩半 : 한냥 반, 兩班과 兩半은 동음)은 커녕 한푼어치도 안 되는구려!” 하고 푸념하였다.

그 마을의 부자가 “양반은 비록 가난하여도 늘 존귀하고 영화로우나 나는 비록 부유하여도 비천하니 참으로 욕된 것이다. 지금 양반이 가난하여 관곡을 갚을 수 없으므로 양반을 보전하기가 어렵게 되었으니 내가 사서 가지겠다.”고 사사로이 의논을 하였다. 드디어 양반을 찾아가 관곡 갚기를 청하자 양반은 기뻐서 허락하였으며, 부자는 그 자리에서 관곡을 실어 보냈다.

군수가 놀라 몸소 가서 그 양반을 위로하고 관곡 갚은 경위를 물어보려 하였다. 그러자 양반은 전립에 짧은 옷을 입고 땅에 엎드려 소인이라 자칭하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경위를 알게 된 군수는 짐짓 부자의 행위를 야단스럽게 기리고 나서, 이런 사사로운 매매는 소송의 단서가 되므로 문권(文券 : 공적인 문서나 서류)을 만들어야 한다고 명하고, 관아로 돌아와 모든 고을 사람들을 불러놓고 문권을 만들었다. 문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륭(乾隆) 10년 9월 일 명문(明文)은 양반을 팔아 관곡을 갚으니 그 값이 1,000곡(斛)이다. 양반을 일컫는 말은 선비?대부(大夫)?군자(君子) 등 여러 가지이다. 네 마음대로 하라. 더러운 일은 하지 말고 옛일을 본받아 뜻을 세운다. 오경(五更 : 새벽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는 항시 일어나서 유황을 뜯어 기름불을 켜고 눈은 코끝을 보면서 발꿈치를 모아 꽁무니를 괴고 ≪동래박의 東萊博議≫를 얼음에 박밀듯이 외우고……소를 잡지 않고 노름을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온갖 행동이 양반에 어긋남이 있거든 이 문권을 가지고 관가에 나와 바로잡을 것이다.”

정선군수가 문건에 수결을 하고 좌수?별감이 증인으로 서명한 뒤에 통인이 문권 가운데에 관인을 찍었다. 호장(戶長)이 읽기를 마쳤다. 부자는 슬픈 기색으로 “양반이 신선 같다고 들었는데, 참으로 이와 같다면 한쪽은 너무 이익이고 한쪽은 너무 손해니, 이익이 될 수 있도록 고쳐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다시 문권을 만들었다. 다시 만든 문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이 백성을 낼 때, 그 백성이 넷이고, 사민(四民)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선비다. 이것을 양반이라 일컬으니 그 이익이 막대하다. 농사도 하지 말고 장사도 하지 말고 대강 문사(文史)나 섭렵하면 크게는 문과에 오르고 작아도 진사는 된다. 문과 홍패(紅牌)는 두 자(尺 척)밖에 안 되지만 백물이 갖추어져 있는 돈주머니이다……궁사(窮士)가 시골에 살아도 오히려 무단(武斷)을 할 수 있다. 이웃집 소로 먼저 밭을 갈고, 마을 일꾼을 데려다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홀만하게 여기랴. 네 코에 잿물을 붓고 머리끝을 잡아돌리고 수염을 뽑더라도 감히 원망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자는 문권의 이 대목에 이르러는 혀를 빼물며 “그만두시오, 그만 두시오, 맹랑합니다. 장차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이오?” 하고 머리를 흔들고 가서 죽을 때까지 양반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양반전>에 대하여 박지원은 <방경각외전>의 자서(自序)에서 다음과 같이 그 저작 경위를 밝히고 있다 “사(士)는 천작(天爵)이니 사(士)와 심(心)이 합하면 지(志)가 된다. 그 지(志)는 어떠하여야 할 것인가? 세리(勢利)를 도모하지 않고 현달하여도 궁곤하여도 사(士)를 잃지 말아야 한다. 명절(名節)을 닦지 아니하고 단지 문벌이나 판다면 장사치와 무엇이 다르랴? 이에 <양반전>을 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천작을 팔고 산 정선 양반과 상인인 부자를 풍자한 것으로 허위와 부패를 폭로한 것이다.

<양반전>에서 처음 만든 문권에 나타나는 것은 양반의 형식주의이다. 두 번째에 만들다가 만 문권에서는 양반의 비인간적인 수탈 등이 매우 구체적이고 희화적(戱?的)으로 서술되고 있다. 이 점에 착안하여 <양반전>은 양반의 위선적인 가면을 폭로하고 봉건계급 타파를 주장한 소설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작품을 분석하여 얻은 결론은, 치부를 한 뒤 신분상승을 꾀하여 양반이 되고자 하는 정선의 한 부자가 마침 어느 몰락양반이 당면한 극한 상황을 계기로 그 양반을 사 가지는 사건을 두고, 같은 양반 계층인 군수가 기지를 써서 이 매매행위를 파기시켜버린 골계소설이라는 것이다.

그 까닭은 최초에 설정하였던 관곡 보상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뒤에 군수가 새로 이 사건에 개입한 점, 문권의 내용은 양반이 상인(常人)이 되어 지켜야 할 일들이 제시된 것이 아니고 상인이 양반이 되어 지켜야 할 것만을 요구하는 일방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첫째 문권은 양반이 행하는 일들의 골계적인 표현이며, 둘째 문권은 계약 파기의 적극적인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견해는 작가가 가진 철저한 계급의식을 감안할 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양반전>은 부농이 등장하여 경제력에 의한 양반신분획득의 가능성이 나타난다. 그리고 관료사회의 부정이 깊어졌으며, 몰락양반의 비참한 모습이 드러나는 등의 조선 후기의 역사적 상황이 작가의 간결한 필치로 잘 그려진 작품이다.

또한 사이사이에 끼여 있는 교묘하고 익살스러운 표현은 독자의 웃음을 유발한다. 속된 표현이라 하여 당대에 많은 비난을 받았던 이 작품은 도리어 그 표현 때문에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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